내마음별

왜 그리 쪼그라들고 움츠러들면서 살아야 하나?

천석고황 2022. 12. 26. 07:15

 

왜 그리 쪼그라들고 움츠러들면서 살아야 하나?

2022.11.29.

서울 종로 인사동 거리에 구름처럼 많은 사람이 인사아트홀 북콘서트 장으로 물밀듯 밀려 들어온다. 무대 정면 스크린에 샤갈의 그림 두 장이 걸린다. 우선 야하다. 샤갈이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면 외설이라고 말했을 정도의 그림이다. 

<맹문깨천> 086 ‘庶幾中庸(서기중용)이면, 勞謙謹勅(노겸근칙)’의 해설 “예술과 외설 그 한가운데 중용이 있다.”라는 주제를 표현한 것이다.

관객이 홀을 가득 채우면 무대 커튼이 열리면서 기타의 선율 아래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원어인 불어로 낭송되고 이어서 조정권 시인의 <산정묘지(山頂墓地) 1>이 낭송된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삶 “짧은 만남 영원한 이별 & 짧은 이별 영원한 만남”을 주제로 마임이 이어지고, 기타 선율이 인사아트홀에 넘쳐흐를 때 이병태 교수와 강민구 판사가 무대에 올라 부국강병의 길에서 만난 통찰력에 대해 역설과 아이러니를 이야기한다.

드디어 메인 북콘서트, 주제인 “1780! 왜 그는 만리장성을 넘었는가?”라는 타이틀이 정면 스크린에 비치고, 테이블에는 와인과 바게트가 놓인 상태에서 1명의 사회자와 5명의 패널이 등장한다. 사회는 홍붕선(Boongsun Hong), 톡은 김봉중(Bongjoong Kim), 윤일원, 이명훈, 이상랑(Sang Rang Lee), 정명순 (가나다순)이다.

첫 번째 주제, “#1 (실크로드 완성) 칭기즈칸의 호라즘 침공으로 촉발된 세계사의 요동”이 시작되고, 사회자의 발제가 이어진다.

“칭기즈칸의 아내 부르테는 메르키트 부족에게 납치를 당한다. 훗날 바이칼 호수 근처에 있던 메르키트 부족을 정복하고 아내를 찾아왔지만, 아내는 이미 다른 사내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칭기즈칸은 말없이 아내를 거두었고 함께 제국을 다스린다.

몽골 비사에서는 재결합 이들 부부의 행복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으며, 더욱이 임신한 상태의 부르테와 그들의 사생활에 대해서조차 입을 다문다. 어쨌든 부르테는 1179년 맏아들을 낳았으며, 테무친은 그에게 '방문객' 또는 '손님'이라는 뜻의 ‘주치’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칭기즈칸이 호라즘 원정을 떠나기 전에 가족회의인 쿠릴타이를 소집한다. 사실상 전쟁을 떠나기 전에 후계자를 결정하기 위함이다. 칭기즈칸은 몽골의 전통에 따라 맏아들 주치에게 먼저 발언권을 준다. 그러자 둘째 아들 차가타이가 반발하고 주치가 사생아라고 비난한다. 

칭기즈칸은 아들에게 애원한다.

'그들이 어머니를 납치했을 때 어머니의 잘못은 아니었다. 네 어머니는 집에서 달아나지조차 않았다. 네 어머니는 다른 남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네 어머니는 죽이러 온 사람에게 납치를 당했을 뿐, 너희 모두는 하나의 자궁으로부터 태어났으며, 자신의 심장으로부터 생명을 나누어준 어머니를 모욕하고, 만약에 너희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얼어붙게 만든다면, 나중에 사과한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임을 명심하라.’”

이어서 다섯 분의 톡이 이어지고, 두 번째 주제인 “#2 (험악한 대항해 시대) 비단 상인 메디치의 르네상스와 대항해, 산업혁명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5 (그래도 살맛 나는 인생) 천자문에서 체득한 수신제가(修身齊家)”의 경험담을 마지막으로 무대의 막이 내려진다.

북콘서트의 기획 의도는 역사의 한 장면을 마치 정지된 사진처럼 뽑아내 청중에게 사회자가 발제하고, 이어 각 분야에 톡 콘서트가 이어지고, 기획팀이 뽑은 세계 역사의 변곡점 5장면 #1 (실크로드 완성) 칭기즈칸의 호라즘 침공으로 촉발된 세계사의 요동, #2 (험악한 대항해 시대) 비단 상인 메디치의 르네상스와 대항해, 산업혁명까지, #3 (실학자의 꿈) 조선 한양 백탑파의 하룻밤 이야기에서 그들의 한계까지, #4 (강렬한 꿈) 5천 년 역사의 가장 경이로운 일 (해방 이후부터 박정희 시대까지만), #5 (그래도 살맛 나는 인생) 천자문에서 체득한 수신제가(修身齊家)가 톡으로 이어진다.

북 콘서트의 원칙은 깔깔 웃고 떠드는 가운데 통찰력 있는 한마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이야기는 사양하고 지루함 또한 금물이다. 정명순선생님의 말 “뭐, 까무러치기밖에 더 하겠어요.”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true color’를 마음껏 발산하는 자리, 관객들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다. 

드레스 코드는 청바지에 검은색 혹은 붉은색 터틀넥이다.

우리가 인사동에서 정권을 뒤엎는 반란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거대한 범죄를 모의하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리 쪼그라들고 움츠리면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반론이 북콘서트의 면면히 흐르는 문제의식이다.

*사진은 샤갈의 그림과 기획 회의 사진(202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