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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풍광

첫눈이 내린 날 사라진 낭만의 애잔함

 

 

첫눈이 내린 날 사라진 낭만의 애잔함

2022.12.04.

인류의 위대한 삶을 바꾼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것은 결국 책을 통해서만 근본적인 변혁를 가져온다. 어쩌다 책을 읽지 않은 민족이 되어 사사건건 모든 것이 정치로 탈바꿈하는 신공(神功)을 선보인 결과 첫눈이 내렸지만, 첫눈인지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용감함으로 우리가 얻은 것이 있다면 ‘잃어버린 첫 경험’일 것이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새로운 사상을 처음으로 선보이자, 유럽의 점잖은 신사분들이 거친 들판이나 황량한 오지, 식민지의 섬으로 파고들어 화석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 스페인의 신사인 돈 마르셀리노 산스 데 사우투올라도 에스파냐 북부에 있는 자신의 소유지에 혹시나 있을지 모를 동굴 인간을 찾으러 8살 딸과 함께 떠났다.

자신의 이름을 다윈처럼 학회에 떡 올려 명성을 얻으려는 아빠와 달리 딸은 8살 소녀답게 주의 집중을 오랫동안 할 수 없기에 동굴 안을 이리저리 뛰어놀다 우연히 천장을 보는 순간 “아빠, 여기 봐요. 소가 있어요!”를 외친다.

모든 사람이 꿈꾸는 위대한 첫 경험 “세상에나!”의 순간, 자칭 고고학을 꿈꾼 사람이 아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경이의 순간’,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그 현장을 경험한 사람은 별로 없다. 

세월이 흐른 뒤 알타미라(Altamira) 동굴을 방문한 피카소는 “우리 가운데 누구도 이렇게 그릴 수 없다. 알타미라 이후로 모든 것은 데카당스다.”라고 극찬한다. 딸의 발견은 피카소의 숨을 멎게 했지만, 아버지의 삶을 망가뜨렸다. 

“어떻게 감히 동굴 인간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 

고고학계는 그를 ‘거짓말쟁이’ 혹은 ‘남을 잘 속이는 사람’으로 매도하였고, 신사인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욕에 시달려 8년 만에 비참하게 죽는다.

3만 년 전, 인간은 빛의 짙음과 옅음으로 나타나는 문양을 동굴 벽에다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벽에는 구석기 시대의 동물인 들소, 사슴, 말, 노루, 이리, 멧돼지 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라진 동물이 그려져 있다.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도 소나 호랑이, 표범, 사슴 등 육지 동물도 있지만 고래가 많다. 귀신고래, 범고래, 흰긴수염고래, 작살을 맞은 고래, 새끼 고래, 고래를 잡기 위한 작살과 배 등 가히 고래의 전시장이다.

그들 원시인이 최초로 표현했던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의 바람 혹은 욕망이다. 단순하다. 힘들고 배고프면 욕망이 강하게 드러나는 법. 하지만 사람이 석기시대를 지나 농경시대로 이어지고 다시 대항해 시대를 거치게 되면서, 무언가 삶이 꿈틀거리자, 숨겨진 욕망이 대폭발하게 되고 그 이후로는 사그라진다. 그때 나타난 그림은 매우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다. 자연 풍경뿐만 아니라 시기와 질투, 사랑, 권력욕, 종교의 이념, 국가 질서를 표현한 그야말로 인간 상상력의 대폭발과 대충돌이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 그 모든 것이 하나둘 정리되면서 사상 또한 단순해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인간 행동도 단순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자유와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이렇게 주의(主義)가 하나나 혹은 한두 개로 귀결됨에 따라 메인 줄기가 형성되고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으로 소소하게 변했다. 그 결과 인류는 생산성의 폭증으로 풍요와 수명의 안락함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얻은 생각의 곁가지를 잘라내자 ‘낭만’이라는 빈틈도 사라졌다.

어제는 첫눈이 내렸다. 진성의 ‘안동역’에서 가사처럼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이것을 추억하는 사람도 없고 꿈꾸는 사람은 더 없다. 불확실성을 제거된 삶, 안락과 풍요를 얻었지만, 꾸역꾸역 단조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로 전락한 것 또한 사실이다.

*사진은 소백산(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