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서치전(看書痴傳)
이덕무
목면산(木覓山, 남산) 아래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는데, 어눌(語訥)하여 말을 잘하지 못하고, 성품은 게으로고 졸렬해 시무(時務)를 알지 못하였으며, 바둑이나 장기는 더구나 알지 못하였다. 이를 두고 다름 사람들이 욕을 해도 변명 하지 않고, 칭찬을 해도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으며, 오로지 책만 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추위나 더위, 배고픔이나 아픈 것도 전연 알지 못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되기까지 하루도 손에서 고서(古書)를 놓지 않았다. 그의 방은 매우 작았다. 그러나 동창과 남창, 서창이 있어 해의 방향을 따라 밝은 곳에서 책을 보왔다. 지금까지 보지 못하였던 책을 보면 문득 기뻐서 웃으니, 집안사람들은 그가 웃는 것을 보고 기서를 구한 줄 알았다.
자미(子美, 두보 杜甫)의 오언율시(五言律詩)를 더욱 좋아하여, 병을 얻어 끙끙 앓는 사람처럼 골몰하여 웅얼거렸다. 심오한 뜻을 깨우치면 매우 기뻐서 일어나 왔다갔다(周旋) 걸어다녔는데, 그 소리가 마치 갈까마귀가 우짖는 듯하였다. 혹 아무 소리도 없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뚫어지도록 보기도 하고 혹은 꿈꾸듯이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니, 사람들은 그를 두고 간서치(看書痴, 책만 읽는 바보)라고 하였다. 이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의 전기(傳記)를 지어 주는 사람이 없어, 이에 붓을 떨쳐 그에 관한 일을 써 <간서치전 (看書痴傳)>을 만들었다. 그 이름과 성은 기록하지 않았다.
*인용: 한정주 지음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영처문고(嬰處文稿) 중에서’ p.94
*평어(評語): "오로지 책만 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추위나 더위, 배고픔이나 아픈 것도 전연 알지 못하였다." 정말 좋아하고 즐기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아픈 것도 잊고 배고픔도 잊을 정도의 몰입, 그러면 책 읽기에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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