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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별

안내를 부탁합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

 

폴 빌라드

 

어린 시절 시애틀에 살 때,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전화가 있는 몇 안되는 집이었다. 나는 지금도 2층 계단 옆 벽 아래에 붙어 있던 윤이 나는 참나무로 만든 커다란 전화기를 또렸이 기억한다. 반짝이는 수화기는 전화기 바로 옆에 놓여 있었다. '캔 우드 3105'였던 전화번호까지 기억한다. 일곱 살이었던 나는 키가 작아서 전화기가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전화기에 대고 말씀하시는 게 신기해서 전화하는 내용을 듣곤 했다. 출장을 간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라며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안고는 내 귀에 수화기를 갖다 대면 수화기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술이었다.

이 신기한 상자 안에는 신비한 사람이 사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안내를 부탁합니다'였다. 그녀은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여자였다. 그녀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 전화번호를 물어도 그녀는 척척 대답해 주었고, 우리 집 괘종시계가 고장이 났을 때도 정확한 시간을 알려 주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 수화기 안에 사는 요정과 개인적인 친분을 맺게 된 것은 어머니가 이웃집에 가고 안 계신 어느날이었다. 지하실에서 혼자 연장 통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망치로 손가락을 찧었다. 너무 아팠지만 집에는 응석을 받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울어 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화끈거리는 손가락을 입으로 빨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때 2층 계단 옆에 있던 전화기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응접실에서 발 받침대를 가져와 딛고 올라서서 전화기를 집었다. 수화기를 들고 귀에 대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몇 번 바꿔 드릴까요?"

나는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

한두 번 찰칵하는 연결음이 나더니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내입니다."

나는 전화기에 대고 울음을 떠뜨렸다.

"손가락을 다쳤어요. 아파요. 엉엉."

이제 누군가가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수화기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물었다.

"집에 엄마 안 계시니?“

나는 훌쩍거리며 대답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어요."

"피가 나니?"

"아니오. 망치로 손가락을 쳤는데, 느냥 아파요.“

그녀가 물었다.

"냉장고를 열 수 있니?"

내가 할 수 있다고 하자, 그녀가 말했다.

"위 칸에 있는 냉동실에서 얼음 조각 몇 개를 꺼내 손가락에 대고 있으면 아프지 않을 거야. 울지 말고. 곧 괜찮아질 거야.“

그녀의 말대로 했더니 정말 아프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나는 '안내를 부탁합니다'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 후 내가 혼자서 알아낼 수 없는 일이 생기면 항상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만능 해결사였다. 무엇이든 모르는 것이 없었다. 항상 인내심과 이해심을 가지고 내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지리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필라델피아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나중에 탐험을 하고 싶은 아름다운 오리노코 강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 주었다. 그녀는 철자법도 가르쳐 주고, 우리 집 고양이가 석탄을 담는 큰 통 안에서 새끼를 낳았을때는 며칠 동안 가까이 가지 말라는 말도 일러 주었다. 그녀는 내가 레버나 공원에서 잡은 다람쥐에게는 땅콩이나 밤 등 견과를 먹이라고 했다.

어느날 나는 사랑하는 카나리아 패티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안내를 부탁합니다'에게 전화를 걸어 슬픈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녀는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어른이 아이를 달래 때 하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우리를 기쁘게 해 준 카나리아가 어느 날 갑자기 왜 날개를 퍼덕이다 새장 바닥에 쓰러져 죽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내가 깊이 상심한 것을 알고 다정히 말했다.

"풀, 그 새가 노래 부를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라."

그 말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어느 날 나는 다시 전화로 안내를 불렀다.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내입니다."

내가 물었다.

"고정시키다'라는 단어의 철자가 어떻게 되지요?"

"'고정시키다'? 음 .... f-i-x.“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누나가 뒤에서 "야-아-아!"하며 비명 소리를 내면서 놀래 주려고 달려들었다. 나는 전화기에 달린 수화기를 그대로 쥔 채 받침대에서 떨어졌다. 누나는 내가 놀라는 것을 보고 재밌어 하다가 내가 여전히 전화기에서 떨어져 나간 수화기를 잡고 있는 것을 보자 소리를 질렀다.

"야, 그것을 잡고 있으면 어떻게 해? 전화선이 끊어졌잖아."

그 순간 내 실수로 '안내를 부탁합니다'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걱정되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내를 부탁합니다.'는 이제 수화기 안에 없었다. 내가 수화기를 잡아당겨 전화기가 부서졌을 때, '안내를 부탁합니다'가 다쳤는지 궁금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누나는 어디론가 나가 버렸고 나 혼자 계단에 앉아 울고 있는데 누군가 현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현관에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물었다.

"뭐가 잘못된 일이 있었니?"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나는 전화를 수리하는 아저씨란다. 저 아래 동네에서 일하고 있는데 전화 교환 아줌마가 이 전화번호에 문제가 생겼다고 알려 주어서 왔단다."

그는 아직도 내 손에 들린 수화기를 잡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니?“

나는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했다.

"잠깐이면 고칠 수 있다. 울지 말거라."

그가 전화기를 열자 여러 가닥의 선과 코일이 복잡한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그는 아주 능숙한 솜씨로 수화기에 달린 줄의 끝을 전화기 속에 있는 한 곳에 대고 만지작거려 스크루 드라이버로 조여서 고정시켰다. 그는 고리를 몇 번 위아래로 움직이더니 전화기에 대고 말을 했다.

"여보세요. 저 피트입니다. 3105번 이제 정상입니다. 아, 이 집 꼬마의 누나가 꼬마를 놀래 주려고 장난을 하다가 전화선이 끊어졌어요. 다시 고정시켰으니까 이제 됐어요. 수고하세요."

그는 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갔다.

동부로 이사 갈 때까지 나는 계속 '안내를 부탁합니다'에게 필요할 때 마다 전화를 걸었고 그녀는 늘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답해 주었다. 나는 새로 이사 가는 집의 전화기 안에 그녀가 없을 것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에 그녀에게 작별 인사도 못 했다. 이사를 하고 며칠 지나서 짐이 다 정리되고, 어머니가 거실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 있는 검은 물건을 들고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의 실망은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말씀이 끝나자 그게 뭐냐고 물었다.

"새 전화기란다."

나는 공포에 질려 그 물건을 쳐다보았다. '안내를 부탁합니다'는 이런 무슨 뼈다귀같이 생긴 검고 흉측한 물건 속에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 더는 전에 살던 집 벽에 걸려 반짝반짝 빛나던, 참나무 통으로 만들어진 전화기는 없었다. 그 옆에 있던 예쁜 수화기도 더는 볼 수 없었다. 내 귀에 속삭이던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도 사라졌다. 나는 큰 배신감을 느꼈다. 내 질문에 답을 해 주던 '안내를 부탁합니다'에게 이제 다시는 어떤 부탁을 할 수 없었다. 새 전화기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내 삶에서 아주 소중한 것을 뺏어 가 버렸으니 새 전화기는 이제 친구가 아니라 적이었다. 나는 새 전화기가 미웠다. 화가 나서 손으로 새 전화기를 밀었다. 탁자에서 미끄러져 기울어지더니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그것을 바닥에 그대로 둔 채 나가 버렸다.

십대가 되어서야 전화기의 작동 원리를 알게 되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는 점점 기억에서 희미했지만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었다. 어떤 것에 대해 의심이 들고 불확실할 때면 불현듯 '안내를 부탁합니다'가 생각났다.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이든지 답을 해 주던 요정이 존재할 때 느꼈던 안도감이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새 전화국의 안내 제도는 더는 질문에 답을 해 주지 않았다. 전화를 해서 안내를 찾으면 대개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캔 우드의 '안내를 부탁합니다'가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꼬마에게 얼마나 큰 인내심과 이해심으로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는지를 깨닫게 되자 가슴 벅찬 깊은 감사를 느꼈다.

결혼한 누나는 다시 옛날 시애틀에서 우리가 살던 캔 우드 가까운 동네에 살게 되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시애틀에 사는 누나를 몇일 동안 방문하기로 했다. 누나가 사는 동네의 전화국도 캔우드에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별 생각없이 누나의 전화기를 들자 수화기에서 "몇 번을 바꿔 드릴까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

한두번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목소리가 들렸다.

"안내입니다."

그 한마디에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나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다. 그 목소리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시간의 간격이 전혀 없었고 공간도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 그대로인 것처럼 나는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내가 물었다.

"'고정시키다'라는 단어의 철자가 어떻게 되지요?"

나는 급히 숨을 들이쉬다가 멈추는 소리를 들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손가락은 안 아프지?"

내가 물었다.

부인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만나고 싶습니다."

"나는 존슨 부인이고 원래 이름은 샐리지만 사람들은 나를 델신이라고 불러. 여기 직장 사람들 말고 옛날 친구들 말이야."

그녀는 잠깐 숨을 멈추었다가 말했다.

"너도 내 친구들 처럼 델신이라고 불러 주면 좋겠어."

내가 물었다.

"왜요?"

그녀는 말했다.

"나도 너를 만고 싶어. 만나서 얼굴을 보면서 그 이유를 말해 줄게."

내가 물었다.

"오늘 저녁 식사는 어떠세요? 남편 존슨 씨도 시간이 괜찮으면 함께 오세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존슨 씨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

그녀는 다시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함께 저녁 먹자. 나는 6시면 퇴근해."

"어디에서 만날까요?"

"우리집에서 저녁을 먹으면 어떨까? 식당에가는 것보다 편할 거야. 오리노코 강에 대해서도 듣고.“

그녀는 내게 자기 집 주소를 알려 주었다. 오래전에 우리가 살던 집과 같은 동네였다.

"존슨 부인, 조금 후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그 목소리에 '안내를 부탁합니다'라고 부르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존슨 부인과 전화를 끊고 여행사에 전화를 해서 다음 날 같은 시간으로 비행기 시간을 변경했다. 다시 존슨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만날 약속을 했다. 나는 큰 파티에 초대받은 것처럼 흥분되어 그날 오후 내내 들떠서 외출 준비를 했다. 누나는 내가 차려입은 모습을 보더니 놀렸다.

"어머나! 너 여기 여자 친구 있었니? 도대체 누군데 그렇게 차려입었니?"

나는 잠시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 맞아.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러 가."

존슨 부인의 집은 아담하지만 바같 정원이 잘 가꾸어졌다. 나는 이상한 기분으로 벨을 눌렀다. 괜히 방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나는 '안내를 부탁합니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젊어 보였다. 오십대 후반의 백발에 눈에는 주름이 많았다. 눈가의 주름은 많이 웃으며 살아온 해학의 훈장이리라. 그녀는 지금도 웃고 있고 촉촉하게 젖은 갈색 눈은 빛났다. 그녀가 말했다.

"어서 와. 어서 들어와."

그녀는 나를 거실로 데리고 갔다. 거실 한가운데 나를 잠시 세워놓고 자기는 작은 의자에 앉아 나를 똑바로 처다보았다.

"자, 얼굴을 제대로 보자."

그녀가 말했다.

"와! 잘생긴 청년이 되었네."

그러고는 약간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닌걸."

내가 물었다.

"제가 어떤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셨는데요?"

그녀는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글쎄, 그리스 신들 중 하나인 아폴로 신으로 생각했지."

우리는 함께 웃었다.

나는 거실을 둘러보았다. 서가에는 책들이 잘 정돈되어 꽂혀 있었다. 존슨 부인이 내 옆에 서더니 서가 한쪽에 놓인 책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책이 내 아폴로 신을 지키는 델포이 신전 군사들이었지."

내가 물었다.

"세상에, 델포이 신전의 군사들이라니 무슨 말이에요?"

"바로 너와 연관된 거란다. 또 하나의 내 이름이 된 델신도 거기서 붙여졌지."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말했다.

"자, 저녁 준비가 되었으니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자."

소박하지만 정성스레 차린 음식은 아주 맛있었다. 내가 요리 솜씨가 정말 훌륭하다고 하자 그녀가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남편 월터도 내가 만든 요리를 아주 좋아했지."

그녀가 조용히 이야기를 계속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월터와 나 사이엔 아이가 없었단다. 그래서 네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을 때 마치 내 아이 대신인 것 같았어. 나는 늘 네가 다시 전화 걸기를 기다렸단다. 그런데 말이야."

그녀는 이야기를 멈추고 내게 물었다.

"너는 '고정시키다'라는 단어의 철자를 어떻게 된다고 생각했었니?"

내가 대답했다.

"F-i-c-s, 아니면 f-i-c-k-s.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제게는 x는 이상한 철자였어요."

그녀가 말했다.

"내 생각이 맞았구나. 어쨌든 너는 나를 참 끈기 있게 만들곤 했지. 그는 네가 던진 질문을 듣고는 한바탕 크게 웃고 나를 놀렸지. 내가 델포이 신전 아폴로 신의 수호자가 되었다고. 그러더니 줄여서 델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야. 처음에는 장난으로 부르다가 아예 내 이름이 되어 버렸지."

그녀가 회상에 잠긴 듯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어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때 나는 네가 만일 모르는 걸 물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 그래서 네가 주로 묻는 질문에 관한 책들을 모으기 시작했지. 지리, 자연, 동물 등등. 내가 다른 책을 사 올때마다 월터는 나를 놀렸단다. '당신 신전의 서가에 군사가 하나 더 추가되는군.' 그렇게 하여 델포이 신전에 여러 군사들로 이루어진 책들이 마련된 거야."

우리는 아주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그때 죽은 카나리아 패티는 어떻게 되었니?"

"아버지의 시가 상자에 넣어 체리나무 아래에 묻어 주었어요. 돌로 작은 비석도 하나 세우 주었고요."

내가 떠니가 전에 말했다.

"저는 내일 떠나요. 하지만 학기가 끝나면 다시 돌아올 겅예요. 그때 전화해도 괜찮지요?"

그녀가웃으며 대답했다.

"캔 우드에 있는 아무 전화기나 들고 '안내를 부탁합니다'를 찾으면돼. 나는 주로 오후에 일해."

몇 달 후 나는 다시 시애틀에 돌아왔고, 제일 먼저 '안내를 부탁합니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낯선 목소리가 들여왔다. 나는 샐리 존슨 부인을 찾는다고 했다.

그 목소리가 물었다.

"샐리의 친구입니까?"

"오랜 친굽니다. 폴 빌리어드라고 전해 주세요."

그 목소리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샐리는 5주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잠깐만요, 혹시 폴이라고 하셨나요?"

"예. 제가 폴입니다."

"샐리가 마지막 출근하던 날 당신에게 전해 줄 메모를 남겼어요. 여기 당신이 다시 전화를 걸면 읽어 주라고 한 메모지가 있답니다."

나는 거기 어떤 말이 적였을지 짐작했지만 모른 척 물었다.

"뭐라고 씌어 있는데요?"

"아, 제가 읽어 드리지요. '폴에게 말해줘요. 나에게는 아직도 노래를 부를 또 하나의 세상이 있다고. 그러면 폴이 무슨 뜻인지 알 거예요.'"

나는 목소리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물론 '안내를 부탁합니다'가 남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인용: 폴 빌리어드, 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 <문학시간에 수필읽기2> pp.24-36, 원본 : 폴 빌라드 (류해욱 역)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문예출판사, 2007

 

*평어(評語):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이런 필체를 담을 수 있다니 대단한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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