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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풍광

흔들리는 바람에도 나비가 너를 꽉 물고 있네

 

 

흔들리는 바람에도 나비가 너를 꽉 물고 있네

2022.10.24.

차용국 시인이 “코스모스는 아련히 떠오르는 얼굴처럼 스치고, 억새는 인적 드문 강변에서 자유로웠다.”라고 나를 행주산성 역사 공원으로 유혹한다. 나는 그런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이른 아침에 차를 몰고 캐논 DSLR를 메고 한강 수변으로 가니 시인의 말처럼 코스모스가 가득하다. 웬일이니? 코스모스를 촬영하려 하면 없던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바람아 제발 꽃을 흔들리지 말고 차라리 내 마음을 흔들어라. 내가 꽃을 담을 때까지만 기다려 주면 안 되겠니?그것이 그렇게 어렵니? 제발 부탁하노니, 바람에 제발 멈추어 달라.

나는 단색 코스모스를 좋아한다. 변종이 되어 이상한 색깔을 보이는 코스모스는 싫어한다. 내 마음을 알 길 없는 꽃밭에는 죄다 잡티가 풀풀 나는 코스모스로 가득하다. 나는 단일 붉은색 코스모스를 좋아한다. 파란 하늘에 붉은 코스모스, 간들 간들거리는 내 마음 붙들기가 그렇게 어려우니 그것이 내 마음을 붙들었다.

고양시가 만든 평화 누리길을 따라 한강 둔치를 걷는다. 가을 햇살이 높아지면서 햇볕도 따가워진다. 온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외투를 벗고 가볍게 걷는다. 강바람이 서해에서 간간이 불어온다. 물이 바다에서 온 줄은 진즉 알았지만, 바람도 바다에서 온 줄은 내 이제야 깨달았다. 모든 것의 어머니 바다, 물도 품고, 바람도 품고, 하늘도 품고, 땅마저 품었으리라.

길섶을 따라 철 늦은 꽃이 피었고, 꽃이 피니 나비가 날아든다.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나비는 꽃을 이빨로 꽉 깨문 채 흔들거리는 꽃을 놓아주지 않는다. 오호라, 나비의 저 집념. 누가 나비를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했는가? 그것이 아니다. 나비는 강하다. 자기의 이익이 있다면, 자기가 하고자 한다면, 꿀을 빨기 위해서라면 저렇게 강해야 살 수 있다. 

내 이제부터 무릇 모든 생명이 저러할진대 “나이 들어서도 징징대며 철없이 구는 인간을 볼 때마다, 네 이놈 나비만도 못한 인간이야”하고 쌍소리 높여 외칠 것이다.

생존 본능은 무엇일까? 저 식물을 보라. 늦은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기 위해 또 저렇게 자신을 드러낸다. 저 생물들은 조건이 맞으면, 온도와 수분이 맞으면, 언제라도 꽃을 피울 준비가 되어 있다. 늘 그렇게 준비한다. 저것이 저들의 DNA이다. 언제나 그렇다. 때와 조건이 맞는다면 꽃을 피울 수 있는 저들의 힘, 태곳적부터 수천 년간 생존 해온 힘, 저것이 자연의 힘이 아닌가? 철든 인간이 본받을 수 있다면, 늘 자기 자신을 관리하고, 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언제라도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때와 장소가 맞는다면 꽃을 피우는 저들도 그렇게 하는데, 우리는 왜 못 한다고 칭얼거리는가?

마지막 꽃잎을 가진 갈꽃들아, 내가 너를 이 순간 보지 못하면 내년 이맘때 다시 봐야 한다. 지금, 내가 너를 보지 않으면 너도 내년에 이곳에 이 장소에 이 시간에 있다는 것을 누가 알려주리오. 꽃들아, 내년에 다시 보자. 내년에 꼭 이 자리에서 너를 봤으면 좋겠구나.

*사진은 행주산성 역사공원 (2022.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