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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풍광

그건 사랑이 아니라 파충류의 반응일뿐이야

 

 

그건 사랑이 아니라 파충류의 반응일뿐이야

2022.10.25.

내 글 ‘작용과 반작용에 머무는 한 고상한 인간은 아니다’(페북, 2022.10.8.)의 강종백님의 댓글이다. 

“이혼과 배신은 늘고 실패의 사례가 넘쳐 나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사랑을 상대에게서 확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대에게서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면 할수록 상대를 불신하게 되고 나쁜 점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반대로 세상과 상대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게 되면 상대는 나에게서 좋은 점을 계속 새롭게 발견하게 하여 영원히 사랑하게 된다.”

사람들은 사랑이라 착각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파충류 시절에 만들어진 뇌간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고차원적 이성(異性)에 대한 영역싸움에 머물러 있다. 상대방의 관심을 끌기 위해 찡얼거리고 투덜거리고 짜증을 부리고 그것이 해소되면 헤헤거리면서 좋아한다.

우리의 삶은 성장과 성공, 성숙으로 이루어졌다. 성장보다는 성공이고, 성공보다는 성숙이어야 한다. 성숙은 다시 여러 단계로 거듭난다. 나는 성장의 시대를 1.0이라 부르고, 성공의 시대를 2.0이라 부르고, 성숙의 시대를 3.0이라 부른다.

1.0 시대는 폭풍의 시대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첫사랑이다. 사랑의 중심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존재하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되는 지독한 영역싸움에 머물러 있는 파충류 단계다. 

그러기에 오직 두 사람만 존재하여 순수하고 거칠고 때론 무서울 정도로 무모하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다. 어쩌면 무모하면 무모할수록 더욱 더 진정성이 있어 보이고, 상대방도 그것을 진실의 시그널로 착각한다.

“사랑밖에 아무것도 몰라, 사랑밖에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녀를 위해서라면 밤새워 기다리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어”, 하지만 여전히 단 한 사람을 위한 사랑이다. 사랑 안에 책임(responsibility & liability)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랑 안에 헌신이 있다는 사실은 더욱 모른다.

나를 좋아하면 좋아하고, 나를 싫어하면 싫어하는 단순한 행동의 고차원적인 반응이다. 만약 이 단계에서 결혼에 성공하였다면 파충류의 뇌에서 고(古) 포유류 시기에 만들어진 기억과 감정의 사랑으로 발전해야 한다.

2.0 시대는 꿈의 시대다. 2.0 시대의 사랑은 삶과 사랑에 균형을 알게 되는 시기다. 대부분 이때 결혼한다. 어떤 사람은 사랑에 무게 중심을 두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삶에 무게를 두기도 한다.

하지만 삶이든 사랑이든 결국 결혼하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 탄생한다. 사랑의 중심에는 사랑하는 연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의 예측대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헌신과 봉사, 노고를 서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 안에 책임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 사고의 능력이 갖추어지고 대부분 그에 따라 행동한다. 전략적 사고란 망망 대해의 한 가운데서 배를 항구로 안전하게 끌고 와야 하는 미선과도 같다. 가족의 합 목적을 어떻게 건사해야 하고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으로 자식을 성장시켜 올바른 사회인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을 실체를 깨닫지 못하여 1.0 시대의 사랑을 계속하는 사람이 있다. 애늙은이다. 사랑을 이성에서 가족으로 승화하지 못하여 가족에 대한 책임성이 없다. 여전히 두 사람이 사랑으로 맺어졌으니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사랑을 얻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해 투정과 앙탈을 부린다. 반응에 반응할 뿐, 사랑을 확인하려 들면 들수록 점점 더 난폭한 언어와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길들어지면, 마치 그것도 사랑인 것처럼 착각한다.

3.0 시대는 떨림의 시대다. 최초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떨림의 시대지만 처음의 순수함만은 간직한 사랑이다. 사랑의 중심은 서로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사랑이다. 순수하지만 순수함 속에 현명함이 숨어 있다. 

이제 사랑 안에는 무수히 많은 책임 있다는 것도 알고, 서로에 대한 무한한 신뢰도 알고, 서로를 미워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단계로 진입한다. 사랑에 최초의 계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계단으로 구성되었다는 것도 안다. 

한 계단 올라가지만, 거기에 알맞은 뷰(view)를 찾고 다시 처음처럼 사랑을 나눈다. 성장하면 할수록 매미가 껍질을 벗듯이 여러 계단으로 올라간다. 어느 계단에서도, 상황이 바뀌어도 첫 마음,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거듭 새로 태어나지만, 첫 마음 그대로의 떨림이 간직된 사랑이다. 날마다 처음으로 리셋되는 사랑, 날마다 처음으로 포맷되는 사랑, 3.0 시대의 사랑은 사랑을 통해 한 인간이 스스로 완성하는 단계다. 진화과정에 우연히 침투된 바이러스,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아름답게 만든다.

*사진은 수원 화성과 강원 고성 신선대(2022.3, 202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