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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

너를 만나기 전에는 난 몰랐어

 

 

너를 만나기 전에는 난 몰랐어

2022.12.12.

난, 몰랐어.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세상이 이렇게 달라 보이는지? 세상은 변하지 않아. 변하는 것은 나야. 너로 인해. 그것이 말이 돼. 말이 안 되지만, 분명한 건 사실이야.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고. 무엇이 달라 보이는 줄 알아. 갑자기 별이 반짝반짝 빛난다거나, 달빛이 부드럽다거나, 괜히 아무나 보고 웃음이 나온다거나, 그런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하고는 달라. 그건 20대 때 경험한 느낌이잖아.

이제는 달라. 분명 그때 느낌하고는 완전 달라. 마구 흔들려 온몸을 짓이기는 그런 흔들림은 없어. 그냥 고요해. 참으로. 그러면서도 흔들려. 시간이 마구 뒤틀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아. 공간도 엉클어지기는 마찬가지야. 서울이 뉴욕 같고 뉴욕이 서울 같기도 해, 무엇 하나 온전한 것은 없어. 

과거의 공간에 미래의 사람이 오고, 미래의 공간에 과거의 사람이 오고, 무슨 말인 줄 알아? 이럴 때만큼 내 글쓰기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도 없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야.

가장 심한 증상은 과거나 뭉턱뭉턱 사라지는 현상이야. 사라져. 미래가 과거를 집어삼켰나 봐. 그렇다고 기억이 지워진 것은 아니야. 애써 떠 올려보면 생각이 나. 하지만 깊숙한 곳에 가둬 뒀나 봐. 쉬이 떠올려 나오지 않아.

예전에 즐겨 보았던 <또 오해영>의 박도경처럼 “미래가 보이는 것”은 아니야. 내가 무슨 점쟁이야. 미래를 보게. 하지만 미래의 바램이 지나쳐 과거의 기억을 미래로 바꿔치기하려는 뇌를 의심해보기는 해. 하지만. 그건 뇌에 오류가 발생했을 때나 가능하지 않나? 그렇지만 이 놈이 내 통제도 없이 시도는 하는 것은 분명해. 틈만 나면. 이게 말이 돼.

내가 만델라처럼 로벤섬 감옥에서 27년 동안 갇혀 “아프리카에는 왜 호랑이가 없는가?”라는 주제로 보내면서, 공간 탈출을 상상하면서 그런 시도를 했다면 말이 달라지지. 

하지만 나는 맨날 쏘다녀 집보다 밖이 편한 사람이야. 사람들은 말해. 겉이 겉이라 하면 겉이고, 안이 안이라고 하면 안이고, 근데. 안에 있으면 밖을 생각하면 안이야 밖이야? 밖에 있으면서 안을 생각하면 밖이야 안이야? 그럼 너가 나야, 나가 너야.

인간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버그(bug)를 하나 만들어. 자기변명 말이야. 인간만큼 자기변명에 능한 동물도 없어. 매일 보잖아. 정치꾼 봐. 하룻밤 사이에 강자가 약자 되었다고 약자 프레임으로 위장하고, 약자가 강자 되었다고 과대포장으로 위장하고, 모두 위장의 천재이지.

나도 그런가 봐 뭘 위장하려고 해. 분명. 그렇지만 달라 보이는 것은 사실이야 너로 인해. 분명. 그러면서 행복해. 여태와 다른 종류야. 이런 경험. 북콘서트. 이것이 내 고유 빛깔 true color였으면 좋겠어.

*사진은 북악산 트레킹 (2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