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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방곡

인생 공부 거꾸로 배운 것 같다

 

인생 공부 거꾸로 배운 것 같다

2022.12.27.

1592년 영국 해군 소함대가 아조레스 제도(대서양 중부, 포르투갈령)의 북쪽에 진을 치고 있다가 신세계로부터 귀환하는 스페인 선박을 나포하려 했지만, 걸려든 것은 리스본으로 향하는 포르투갈 국적의 ‘신의 어머니’ 호였다.

“보석과 진주로 넘쳐나는 궤, 금화와 은화, 영국 역사보다 오래된 호박, 초고급 옷감, 궁전 하나를 꾸밀 수 있는 태피스트리(색색의 실로 수놓은 벽걸이나 실내장식용 비단), 후추 425t, 정향나무 향료 45t, 계피 35t, 메이스 3t, 육두구 3t, 벤자민(향수와 의약품의 원료로 쓰이는 방향성이 강한 송진) 2.5t, 흑양홍(아열대 기후에서 서식하는 곤충의 암컷을 말려서 만든 염료) 25t, 흑단 15t”

그 배는 여태까지 영국인이 한 번도 못 적이 없는 규모였고, 영국이 보유한 가장 큰 배의 세 배나 되는 크기였다. 영국이 놀란 것은 배의 크기가 아니라 그 배 안에 들어있는 화물이었으며, 당시 영국 재무성이 보유한 총 화폐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임진왜란이 발생한 그때 영국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 질문에는 이미 ‘답정너’가 들어 있다. 해군이라고 우기지만 해적이었던 나라, 그들은 드디어 신대륙으로 향한다. 국가의 거대한 변혁 뒤에 움츠리고 있는 인간 ‘욕망’, 떼돈 때문이다. 미국의 뉴 프론티어의 금광도 그랬고, 새마을 운동도 사실 그랬다. “농촌을 떠나 도시 공장으로 간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 이것은 거대한 변혁으로 작용한다.

국가의 정체성을 만들어 갈 때 ‘개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다. 국가는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고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유의지’가 충만한 사회를 지향하면 개인은 미래를 향하여 도전장을 내밀 것이지만, 개인의 운명이 국가에 위임하거나 위임 당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소멸하여 복종 혹은 반항하는 길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복종과 반항으로는 새로운 혁신을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를 분열과 파멸로 유도하여 쇠락한다.

조선시대에 서당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교과서로 자신을 수양하고 반성하기 위해 가르쳤던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덕은 겸손에서 생기며, 도는 고요히 생각하는 데서 생긴다. 근심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재앙은 탐하는 마음이 많은 데서 생긴다.”라며 개인의 욕망을 지극히 절제하고 자제하는 것을 사회의 임무로 삼았다.

여느 시골 환경에서도 그렇지만 나도 그 오류에 빠졌다. 읽을 책이 그것밖에 없다고 위안할 수도 있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접한 애늙은이와 같은 인생철학, 이는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고, 인생 중반에 처음 간 영국과 독일을 보고, “이건 뭐지? 얘네가 이렇게 부강해!” 하는 문제 인식으로 여태 읽던 노자와 장자, 사서삼경과 같은 고전을 집어치우고 영어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지 메이슨대학교, 카이스트에서 지적 배고픔을 충족하고 다시 동양고전 인문학을 들게 되었다.

천자문 <맹문깨천> 제106구 “晝眠夕寐(주면석매), 藍筍象狀(남순상상)”의 해석 “낮에는 꾸벅 졸고 밤에는 잠을 자니, 상아 침대 위에 푸른 대나무 돗자리로다.” 그리고 평어(評語) “하마터면 바삐 사는 삶이나, 하마터면 느긋하게 사는 삶이나 모두 삶의 두 축이다. 한 축이 무너지면 다른 한 축이 쓰러진다.” 의미, 거기에는 순서가 있어야 한다.

명심보감은 어린아이가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 삶의 회복 탄력성이 필요할 즈음 읽어야 한다. 어릴 때는 <보물섬>과 <아라비안나이트>와 같은 모험심 가득한 상상의 책을 읽어야 한다. 한 창 도전 의식이 싹터 세상을 거침없이 바라볼 젊은이들한테 “세상 밖으로 나가 도전해라, 미래는 너희들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주지 않고 “아프니까 청춘이야, 그러니 열심히 일하지 마. 안 그래도 잘살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줘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삶이 지치고 힘들 때 회복 탄력성이 극도로 떨어질 때 인간 본성이 가득한 동양고전을 접해야 한다. 가령 知過必改(지과필개), ‘허물을 알았으면 고쳐라.’와 같은 경구다. 모든 사상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젊었을 때 지나친 자기반성은 욕망을 부도덕하게 인식하게 하여 미래를 위해 도전, 창의성을 저해한다.

*사진은 문경 김룡사와 윤필암, 묘적암(202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