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전(小傳)
박제가
그는 조선이 개국한 지 384년째 되던 해, 압록강 동편으로 1천여 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 조상은 신라에서 나왔고, 밀양이 그 관향이다.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취해 제가(齊家)라 이름 짓고, "이소(離騷)"에 들어 있는 노래 "초사(楚辭)"에 의탁하여 호를 초정(楚亭)이라 하였다.
그의 사람됨은 이러하다. 물소 이마에 칼 같은 눈썹, 초록빛 눈동자에 흰 귀를 지녔다. 고고한 사람만을 가려 더욱 가까이 지내고, 권세 있는 자를 보면 일부러 더 멀리 하였다. 그런 까닭에 세상과 맞는 경우가 드물어 언제나 가난했다. 어려서는 문장가의 글을 배우더니, 장성해서는 국가를 경영하고 백성을 제도할 학문을 좋아하였다.
몇 달씩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당시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고명한 일에만 마음을 두고 세상일에는 무심하였으며, 사물의 명리를 종합하고 깊고 아득한 세계에 침잠하였다. 백세 이전의 사람들과 흉금을 트고, 그 뜻은 만 리를 넘어 날아다녔다.
구름과 안개의 기이한 자태를 관찰하고, 온갖 새의 신기한 소리에 귀 기울였다. 아득히 먼 산과 시내, 해와 달과 별자리, 지극히 작은 풀과 나무, 벌레와 물고기, 서리와 이슬, 날마다 변화하지만 정작 왜 그런지는 알지 못하는 것들을 자욱하게 마음속에서 깨달으니, 말로는 그 정상(情狀)을 다 표현할 수가 없고, 입으로는 그 맛을 충분히 담아낼 수가 없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저 혼자만 알 뿐 다른 사람들은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고 여겼다. 아아! 형체만 남기고 가 버리는 것은 정신이요, 뼈는 썩어도 남는 것은 마음이다. 이 말의 뜻을 아는 자는 생사와 성명의 밖에서 그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 찬(贊)한다.
죽백에 기록하고 그림으로 모사해도
세월이 흘러가면 그 사람 멀어지리.
하물며 자연에서 정화를 다 빼놓고
누구나 떠드는 진부한 말 모은다면
어찍 썩지 않음이 있겠는가.
대저 전(傳)이란 전한다는 뜻이다.
비록 그의 조예를 다 드러내고
그 품격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해도,
완연히 특정한 한 사람일 뿐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님을 알게 한 뒤라야,
아득한 세상 하늘 끝에 가거나 천만년 세월이 흘러가도
사람마다 나를 만나 보게 되리라.
'내마음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늦가을 마지막 잎새보다 더 붙들고 싶은 이방인 (1) | 2022.11.26 |
---|---|
비방(誹謗) (0) | 2022.11.15 |
토독토독 단풍에 부딪히는 안개 소리 (0) | 2022.10.09 |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0) | 2022.10.09 |
별 (0) | 2022.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