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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2022.10.17.

프랑스 속담에 '개와 늑대의 시간(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는 말이 있다. 해가 훤히 뜨면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있고, 해가 완전히 져도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어둠에서 밝음으로, 밝음에서 어둠으로, 극에서 극으로 변화는 그 순간에는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없다. 인간의 인식이 사라진 것이다. 한자로는 여명과 황혼의 시간이며 우리말로는 '갓밝이'와 '어둑발'의 시간이다.

개와 늑대의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한 놈은 사람을 살리고 한 놈은 사람을 죽인다. 우리가 개로 인식하면 살고, 우리가 늑대로 인식하면 죽는다. 그 갈림길의 순간을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 한다. 

프로이센의 천재 군인이며, 서양의 전쟁 신(神)이라 불리는 클라우제비츠(1780~1831년)는 전쟁의 불확실성에 대해 “전쟁이란 따지고 보면 대부분이 불확실성의 영역에 속한다. 군사행동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 중 4분의 3은 지극히 애매하고 불확실한 구름에 잠겨 있다. 전쟁은 우연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지극히 애매하고 불확실한 구름의 영역이 ‘전쟁의 안개론(論)’이다. 안개 속에 처한 인간은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여기에도 최고의 행운과 최고의 불운이 존재한다. 잘못될 수 있는 부분이 모두 잘되는 최고의 행운과 잘못될 수 있는 부분이 모두 잘못되는 최고의 불운이다. 앞은 개를 만나는 행운이고, 뒤는 늑대를 만나는 불운이다.

나는 인생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스러움과 속됨(聖俗)의 차이, 위와 아래(上下)의 차이, 앞과 뒤(前後)의 차이, 삶과 죽음(生死)의 차이, 가득 채움과 텅 비움(有無)의 차이, 사랑과 미움(愛憎)의 차이다. 모두 그 변화 한 가운데 존재하는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안개와 마찰’ 구간을 통과하여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이동한다.

묵호등대 아래 까막바위 해안가와 야심한 카페에서 노닥거린 우리는 드디어 이름도 거창한 ‘동해비치호텔’로 들어갔다.

“그 사람의 코 고는 소리가 우람하여 마치 토하는 것도 같고, 휘파람 부는 것도 같고, 한탄하는 것도 같고, 숨을 크게 내쉬는 것도 같고, 후후 불을 부는 것도 같고, 솥의 물이 끓는 것도 같고, 빈 수레가 덜커덩거리며 구르는 것도 같았으며, 들이쉴 땐 톱질하는 소리가 나고, 내뿜을 때는 돼지처럼 씩씩대었다.”

내 지리산 종주 산행 때 대피소에서 들은 소리와 똑같은 음질이었으며, 설악산 중청 대피소에서 들은 소리보다는 다소 낮은 음질이었지만, 그래도 호텔 창밖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묘한 장단이 어울려져 차마 귀마개는 하지 않았다.

새벽 05:30 어달 해변으로 걸어간다. 벌써 어달 일출 사진작가이신 탁동원님께서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계셨다. 여명이 밝아온다.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다. 바다와 하늘을 분간할 수 없다. 잠시 잠깐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가 참으로 아름답다. 나는 일출보다 여명을 더 좋아한다. 여명이 사라지면 일출이 시작되는데, 일출은 ‘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상징성으로 으뜸을 치지만, 빛의 아름다움은 일출보다 여명이 훨씬 더 좋다.

여전히 어달 해변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우주선 사이로 여명이 밝아온다. 황홀(恍惚)이 아니라 홀황(惚恍)하다. 어둠에서 밝음이다.

“그 위는 밝지 아니하고, 그 아래는 어둡지 아니하다.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데 이름할 수 없도다. 다시 물체 없는 데로 돌아가니 이를 일컬어 모습 없는 모습이요 물체 없는 형상이라 한다. 이를 일컬어 홀황(惚恍)하다 하도다.”

내 일찍이 동해의 여명과 일출을 글로 묘사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만, 내 능력으로 그리할 수 없었다. 겨우 베낀 것이라고는 연암이 지은 총석정 일출(叢石亭觀日出)의 한 부분이다.

“하늘과 맞닿은 물만 넘실넘실 해 뜰 조짐이 없고 거센 파도 언덕 치니 벼락이 일어나네, 노상 의심쩍은 건 폭풍이 바다를 뒤집어엎고 뿌리째 산을 뽑아 뭇 바위 무너질까, 고래 곤(鯤, 장자에 나오는 전설상 고기로 크기가 몇 천리가 됨)이 다투어 뭍으로 나올 법도 하이 (중략) 그 빛이 점점 커져 만리를 비추누나 물결 위에 번진 빛 꿩의 가슴 비슷하이, 아득아득 이 천지에 한계 처음 생겼으니 붉은 붓 한 번 그어 두 층이 되었구려 (중략) 붉은 기운 차츰 묽어 오색으로 나뉘더니 먼 물결 머리부터 절로 먼저 맑아지네, 바다 위 온갖 괴물 어디론지 숨어 버리고 희화(羲和, 전설상 해를 태운 수레를 모는 신)만이 홀로 남아 수레 장차 타려 하네”

우리는 동해 어달해변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에서 곰치국으로 해장을 하고 서둘러 준경묘를 달려 갔다.

제3부 <내가 참말로 거기에 있었구나>로 이어짐

*참고 및 인용: 노자 지음 김용옥 옮김 <노자> 제14장 시지불견(視之不見), 박지원 지음 <연암집(중)> 자서(自序) p.15-17, 총석정관일출 277-282, 유선경 지음 <어른의 어휘력> p.74, 클라우제비츠 지음 <전쟁론>

*사진은 어달해변 일출(2022.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