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인생의 입법자, 나는 나를 믿으니까
2022.11.18.
중국 제(齊)나라에 어떤 사람이 살았는데 아내와 첩 하나를 두고 살았다. 그는 밖에 나가면 술과 고기를 배 불리 먹고 돌아왔다. 아내가 누구와 어울리느냐고 물으면 부귀한 사람과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한 번도 부귀한 사람이 찾아오지 않은 것을 의심한 아내가 그의 뒤를 따라가 보니, 북망산에 있는 무덤 사이에서 남의 제사를 기웃거리다가 음식이 남아 있으면 구걸하여 얻어먹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부족하면 딴 곳을 돌아보았다.
이 모습을 본 아내는 돌아와 첩에게 “남편이란 우러러 바라보면서 한평생을 마쳐야 할 사람이었는데,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다.”하고는 뜰 가운데서 울고 있는데, 정작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의기양양하게 잔뜩 자랑만 늘어놓으면서 교만하게 굴었다.
누구나 그러하지 않을까? 산다는 것은 권력자에 기웃거리고, 있는 사람 옆에서 알짱거리면서 가슴 서늘한 일이 더 많거늘, 어찌 고고한 심성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슬만 먹고살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나는 내 인생의 입법자, 나는 나를 믿으니까”라는 자신의 고유 영업(榮業, 빛나는 소명)을 찾아 내면을 가득 채우는 일이다. 내면을 채우지 않고 남들 앞에서 허세를 부려본들 겉멋에 헛배가 잔뜩 불러오고, 처첩에게조차 비웃음을 사면서도 한평생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생각의 끈적임은 가장 최근에 경험한 것을 맨 위로 채우는 것, 시골 묘사(墓祀, 시제(時祭), 시사(時祀)라고도 함) 때 유사가 한 말 “음복(飮福)까지 제사여”라는 이 말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음복은 제사에 모인 모든 사람이 음식과 술을 나누어 마시면서 서로에 대해 축복하는 일이다. 엄숙한 절차가 없고 의미가 없는 듯한 너저부레한 행위를 제사의 절차 안에 포함시킨 의미는 ‘같이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신다.’ 만큼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책을 쓴다는 것의 마지막 행위는 <참고문헌>을 정리하는 일이다. 맹문깨천(맹꽁이도 깨달은 천자문)의 참고문헌은 92권이다. 흩어진 생각의 단편이 난무하고 너절너절해진 글귀를 “짠”하게 정리하는 행위가 <참고문헌>의 정리다. 참고문헌 안에는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부사꿈(부자는 사회주의를 꿈꾼다)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참고문헌>만 정리했다는 것이다. 왜 이 책을 선정하고 어떤 느낌으로 본문에 담았는지는 생각의 꼬리는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의 흐름이 없는 그저 논문 뒤편에 있는 ‘참고’에 지나지 않았다.
<천자문>은 125개의 주제에 대하여 저자의 생각을 담는 글이다. 이미 주제와 소재가 정해져 있다. 수능시험 문제에 답을 하는 책 같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는 이미 정해 놓은바, 법고(法古)는 125편의 천자문 대구이고, 창신(創新)은 <참고문헌> 안에 실마리가 들어 있어야 한다.
가령, 제125구 ‘謂語助者(위어조자), 焉哉乎也(언재호야)’의 해석이다. 천자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꼭 필요한 존재가 어조사다. 혹자는 주흥사가 1,000자를 채우기 위해서 억지로 넣었다는 설도 있으나 나는 인간 만사 꼭 필요한 존재를 마지막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1』 에서 ‘멋있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존재 대장’, “똥구멍”을 마지막 문장으로 선정하였고, 마지막 단어를 “맹꽁맹꽁 개굴개굴!”로 적었다. 세상에 의미 없는 몸짓이 없고 의미 없는 소리가 없듯이, 모든 것이 존재의 소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가장 하찮은 존재인 맹꽁이와 개구리의 소리를 담고자 했다. 마치 양귀비가 할 일 없이 “소옥아, 소옥아~” 하고 계집종의 이름을 부른 것처럼!
*참고 및 인용: 성백효 역주 <맹자집주> ‘이루장구 하(離婁章句 下) 33’ p.258-259, 윤일원 지음 <맹꽁이도 문득 깨달은 천자문> ‘019 蓋此身髮(개차신발) 四大五常(사대오상)’ p.56-57, ‘참고문헌 92’ 299, 선림고경총서 25 <종문무고(宗門武庫) 上> p.46-47 장경각 출판
*사진은 책 표지와 참고문헌 (20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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