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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별

시인은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지만, 가수는 세상의 아픔을 노래한다.

 

시인은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지만, 가수는 세상의 아픔을 노래한다.

2022.11.20.

당송팔대가인 한유(韓愈)는 ‘불평즉명(不平則鳴)’, 즉 시대가 평평하지 않으면 운다고 한다. 대저 물건은 그 평(平)을 얻지 못하면 운다. 초목은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운다. 물은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불면 운다. 금석이 소리가 없으나 이를 치면 소리가 난다. 사람의 말에도 또한 그러하다. 그만둘 수 없음이 있고 난 뒤에야 말하는 것이니 그 노래에 생각이 있고 그 울음에 마음속 응어리가 있다. 대저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이 모두 불평함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아무 소리나 내질러도 노래가 되는데, 나는 노래를 아주 정성스럽게 불러도 노래가 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아무거나 끄적거려도 그림이 되는데 나는 분명 대추를 그렸는데 그리고 나면 감이 되었다. 아무 소리나 내 질러도 노래가 되는 사람 그런 사람 중에 가수 ‘임재범’이 있다. 날숨에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들숨에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 뒤로 넘어간다.

내가 그의 노래를 듣게 된 것은 50대 이후였다. 그전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록 가수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내 핸드폰에 가장 많은 곡을 차지하고 있다. 

참으로 놀랄만한 일은 중학교 때 가장 많이 듣던 노래가 요절 가수 ‘김정호’의 ‘하얀 나비’였다. 왜냐고, 그의 노래에 철학이 담겨져 있어서, 아니면 그의 소리가 애절해서가 아니다. 그냥 들을 수 있는 매체인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뿐이었다. 

70년대 라디오는 중학생인 내 취향을 살려 중학생에 알맞은 노래를 틀어주지 않았다. 라디오의 대중성 때문에 내가 내 음악적 취향을 결정할 수 없었던 시대적 아픔으로 나는 김정호의 애창 팬이 되어갔던 것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듣던 노래가 신중현과 엽전들이 작곡한 이성미의 ‘잃어버린 장미’였다. 이 노래는 연속극의 주제가였다. 내가 연속극을 선택할 만한 채널을 가질 수 없었던 시절에 어른들의 연속극 취향이 내 애창곡이 된 노래였다. 이 곡은 추억이 살아 있어 내 핸드폰에도 담겨져 있다.

이제는 내 음악은 내가 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만 가장 많이 담긴 노래가 임재범이었다. 철학적 의미의 노랫말과 범접할 수 없는 소리, 거기에는 ‘고리타분’에 분노하였던 ‘파괴’가 담긴 듯 들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래다. 내게는 그렇게 들렸고 그렇게 어디를 가나 들었다.

퇴근 이후 어슴푸레한 빛이 내리깔리면 지하철에서 내려 무악재 한성과학고를 뒤로하고 자락길로 오른다. 어둠이 짙게 밴 검은 숲과 대조적으로 아파트 불빛이 휘황찬란하지만, 삶의 무게를 못 이기고 주저앉으려는 내 마음속에 그의 노래는 위안이 되었다. 목소리만큼이나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 내 마음속에 가라앉고 또 가라앉았다. 그렇게 50대의 마음속 내적 갈등과 분노를 뒤로하고 걷고 걸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다.

임재범, 그는 아내가 죽은 지 7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타이틀로 정규 7집 'SEVEN, (세븐 콤마)를 내면서 ‘여행자’라는 곡을 담았다. 

“내 하루는 긴 여행자처럼 헤매이며/ 길을 찾는 것 암흑 같은 바다/ 그 밑에 길이 없는 길을 뛰어드는 간절함으로 채우는 삶도/ 그걸 버리는 삶도 선택엔 늘 용기가 필요했어.” 

이제 그도 나이가 들어 굵고 큼직한 고음이 예전만 같지 않지만, 62년생 범띠라 생각하면 젊었을 때 철없이 마구마구 내질렀던 고음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긁힌 듯 끝없이 이어지는 소리를 듣다 보면 소리가 소리가 아니란 사실도 깨닫게 된다.

나는 가수도 시인처럼 가수가 사라진다는 것은 노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한 추억도 같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가수에게도 시인만큼이나 자신의 아픔을 담았다. 언젠가 그가 떠나가도 노래는 남겠지. 하지만 함께 공유한 추억은 사라지고, 의미만 덩그러니 남은 노래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냥 소리일 뿐이다.

*사진은 7집 'SEVEN, (세븐 콤마)의 이미지 (인터넷에서 가져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