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하면 지는데 제일 부러워했던 북콘서트, 나도 한다.
2022.11.19.
여우 한 마리가 포도나무 밑을 지나갔다. 포도는 너무 높게 달려 아무리 뛰어도 포도에 닿을 수가 없게 되자 “저 포도는 내가 먹기에 충분히 익지 않았어. 나는 신 포도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한다. 누구나 얻기를 간절히 원했으나 얻을 수 없을 때 그것이 실제로는 생각만큼 좋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어 버리는 이른바 ‘적응된 선호’의 '여우의 신 포도' 현상이 발생한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온갖 형태의 '적응된 선호'의 문제를 깨트리는 일이다. 적응된 선호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더 쉽게 견디기 위해 상황을 재해석하고 때론 사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스티븐(새뮤얼 잭슨이 연기) 같은 인물이다. 그는 흑인이면서 노예를 억압하는 데 앞장섰던 다른 노예보다 훨씬 더 불의와 야만적 폭력을 자행하는 데 앞장섰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시도마저 거부한다.
내가 제일 부러워 사는 사람은 어디 여행을 가서 사진을 떡하니 올리는 사람이다. 그것 이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쩌면 나도 ‘적응된 선호도’에 따라 많은 것을 포기한 여우의 신 포도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내 포기할 수 없는 미련 덩어리 ‘출판 기념회 및 북콘서트’다. 이 문제로 몇 주를 고민하다가 큰 누님한테 카톡을 보내니 “내질러, 용기도 나이가 들면 자꾸 사그라져, 오늘 지를 수 있으면 오늘 질러~”라고 한다. 그래서 질렀다.
∙시간: 12.19. (월) 18:00~21:00
∙장소: 인사동 인사아트홀
∙제목: 삼류선비 공학박사 인문학 토크쇼
∙주제: 역사의 변곡점에서 발생한 인문학 & 과학기술 이야기(부사꿈과 천자문 중심으로)
∙모두 말씀: 강민구 판사, 이병태 교수
∙사회: 홍붕선 단장
∙토론자: 김봉중 선생, 이명훈 작가, 이상랑 작가, 정명순 선생
사진: 서범준기자
프로듀서: 신현용감독
이 구상을 국방부 후배 과장한테 했더니만, “오~~, 선배님 이런 것도 합니까? 대단 대단” 한다.
이런 일을 하고자 하면 참으로 용기가 필요한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아니고,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용기가 필요한지? 문득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생각났다.
공자는 제자 자로(子路),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 증석(曾晳)과 같이 앉아 있는데, 은근히 “너희들은 세상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불만이 많은데 만약에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
자로가 먼저 그답게 용기백배하여 “전차 천 대를 낼 수 있는 나라가 큰 나라 사이에 끼여 곤란을 당하고 기근이 들어도 3년 다스리면 백성은 용맹하고 의리를 안다”고 하자 공자는 빙그레 웃는다. 이어 염유가 “사방 60~70리 쯤 되는 나라를 3년 다스리면 백성은 풍족하게 하나, 예악(禮樂)은 어찌할 수 없다”고 하니, 역시 웃기만 한다. 이어 공서화는 “종묘의 제사나 제후의 회합 때에 예복을 입고 집례자가 되고 싶다”고 하니 역시 웃기만 한다. 마지막으로 증석이 “늦은 봄에 옷을 만들어 입고 관을 쓴 벗 5~6명과 같이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다”고 하니 공자는 비로소 “네가 나와 같구나” 한다.
나는 공자처럼 무우에서 바람을 쐬는 대신에 인사동 아트홀에서 세밑에 꺼져가는 인문학에 불을 지피고 방향을 잃어버린 과학기술에 생기를 불어넣으려 한다. 언빌리버블!
*사진은 맹문깨천(맹꽁이도 문득 깨달은 천자문)에 들어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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