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같다면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돼
2022.12.24.
연암(燕巖) 박지원(1737~1805년)이 창애(蒼崖) 유한준(1732~1811년)에게 보내 편지의 전문(全文)이다. ‘고목 나무마저 그리운 이의 모습으로 보이나니’, 그리움을 이보다 더 잘 묘사한 글이 있을까?
“저물녘에 용수산(龍樹山, 개성 근처)에 올라 그대를 기다렸으나 그대는 오지 않고 강물만 동쪽으로 흘러와 어디론가 흘러갔습니다. 밤이 깊어 달빛 비친 강물에 배를 띄워 돌아와 보니, 정자 아래 고목 나무가 하얗게 사람처럼 서 있기에 나는 그대가 거기에 먼저 와 있는가 의심했다오.”
창애가 누구인가, 유홍준 교수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문장 하나로 전국을 문화유산답사의 광풍을 몰고 오게 한 문장이 아닌가?
바로 이 글의 원전을 쓴 분이 유한준이다. 유한준은 <석농화원(石農畵苑)>의 발문에 “그림의 묘(妙)란 사랑하는 것, 보는 것,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잘 안다는 데 있다.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라고 한 것을 유홍준 교수의 버전으로 바꾼 것이다.
나는 유한준의 말도, 유홍준의 글도 다 부정한다. 그렁그렁한 눈물이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듯이 사랑이나 그리움에 무슨 단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눈물이 왈칵 쏟아지듯이 단박에 이르는 것이지, “사랑한 다음 알게 되고, 안 다음 보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 않는다. 그건 지적 유희를 즐기는 자들이 억지 가식적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어제 페친 두 분, 임미옥 선생과 박정미 선생을 만났다. 인사 아트홀 북콘서트 장 객석에서 스쳐 지나가듯 인사만 나눈 후 익선동 카페에서 이상랑 작가와 같이 만났다. 이미 여러 번 콜 하였으나 어디 그렇게 쉽게 응해 줄 마나님은 아닌 듯하여, 세밑을 핑계 삼아, 북콘서트를 핑계 삼아 그렇게 만났다.
만나자마자 만주 봉천에서 독립운동을 한 동지 만나듯 이야기보따리가 한없이 이어졌다. 모두 전 정권의 서슬 시퍼런 적폐 청산에서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천하를 뒤덮고 있을 때 “내가 미치지 않았다.”라는 것을 글로 표현한 분들이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서로 찾아든 동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그 시기를 스스로 독립운동 시기라고 칭하고 있다. 그래서 어둠 밤에 길을 찾듯이 한 발짝 한 발짝 읽은 책에서 따온 문장을 꺼내 좌파들과 싸울 준비를 하고 말미에 참고 문헌을 주르륵 달기 시작했다. 내가 쓴 문장하나 하나 그냥 내 지르는 문장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이론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데 내 검투장으로 걸려든 방문객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두려웠다. 그래서 발견한 두 사람, 임 선생과 박 선생님이었다. 오호라, 이분들, 내 경지를 훨씬 뛰어넘어 외로운 전선을 혼자 형성하고 있네. 반갑고 고맙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고, 그래서 이어진 글들, 때론 위안을 삼기도 하고, 때론 격려를 하듯, 그렇게 몇 년을 보낸 후 어제 드디어 만났다.
사람한테는 그 사람만이 갖는 고유의 문체가 있다. 지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베껴 쓰려해도 되지 않는다. 그냥 인용하는 것이 더 편하다.
임 선생의 글은 매우 찰지다. 쫀득쫀득한 찹쌀떡 같다. 마치 거칠거칠한 언어들을 잘게 썰어 고운 체에 통과시킨 다음 거기서 살아남은 단어를 다시 정교하게 잇고 붙여 쓴 글 같다. 그러면서 감칠맛이 난다. 가끔 입안의 가시처럼 날카롭게 폐부를 찔러 대는 솜씨가 박 선생 왈 “마녀같다”라고 한다.
박 선생은 글을 정반대다. 거칠거칠한 손맛이 가져다주는 장엄함이 있다. 차라리 미각보다 촉감에 더 가까운 글이다. 여성답지 않게 선이 매우 굵고 거친 듯하면서도 정감 나게 감정선을 드러낸다. 여간내기의 글재주가 아니고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솜씨다.
감꽃당에서 2시에 만났다. 이 모임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여는 사대부 대학자처럼 그냥 지명으로 짓자. 그것이 정답이다. 이이 선생은 황해도 밤나무골에서 은거하여 ‘율곡’으로 했듯이, 이황 선생은 낙동강 섶에 은거하여 ‘퇴계’로 했듯이, 그렇게 하여 감꽃당으로 결정하자, 이상랑 작가가 김준태의 ‘감꽃’이라는 시를 줄줄 외어 댄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도대체 한 분은 그림으로 문장을 짓고, 다른 한 분은 역설로 문장을 만들고, 또 다른 한 분은 시대 정신을 문장을 짓는다. 그럼 나는 이분들이 쏟아내는 글과 메타포를 감꽃 꿰듯이 엮기만 하면 되니 이 얼마나 좋은가? 언빌리버블!
*사진은 어제 풍광 몇장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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