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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서

2022.10.4.

가을비가 주절주절 내린다. 대구행 06:45 KTX를 타기 위해서는 홍은동 집에서는 닭보다 먼저 일어나야 한다. 새벽 일찍 일어나는 나는 닭보다 먼저 일어나는 일은 문제가 아니나 닭보다 늦게 잠드는 것이 늘 문제다. 

오랜만에 대구를 간다. 대학 4년을 보낸 곳이지만, 그저 경유지나 다름없던 대구가 코로나 감염으로 어떤 분이 ‘봉쇄’라는 엄청난 말을 꺼낼 때, 저항의 글로 <대구 경북, 고맙고 감사하고 자랑스럽다(2020.4.15. 페북)>을 쓴 이후, 제 첫 저서 『부사꿈』 출판사가 그곳에 있는 까닭으로 또 내려간다.

대구라는 도시는 그렇게 만만한 도시가 아니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과 함께 원군 나온 두사충(杜師忠) 장군이 조선에 귀화하여 대구에 정착함으로써 전국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대명(大明)’ 동(洞)을 지을 정도로 성리학 성향이 강한 도시가 근대화의 물결이 일자 가장 먼저 가톨릭을 받아들일 정도로 변화에 민감한 도시가 대구이다. 그러한 배경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 저항 시인 이상화(李相和)뿐만 아니라 서상돈의 국채보상운동,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2.28 대구 학생의거 등 굵직한 근대 사건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08:31 동대구역에 도착하니 편집장이 기다리고 있다. 피서산장(避暑山莊)으로 간다. 청 건륭제가 칠순 잔치를 하기 위해 번국(蕃國, 조공국가에 속해 있는 나라를 지칭)을 불러들였던 곳, 그곳이 만리장성 밖 열하(熱河)의 피서산장이다. 몽골 기마병이 대륙 침공을 위해 반드시 선택한 루트, 그 길목에 웅크리고 앉은 늙은 황제 대신 늘 앳돼 보이는 출판사 박 대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책을 출간할 때 가장 어려운 문제가 책 이름이다. ‘딱 보면 아는’ 책 이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봐야 할 정도로 중요하지만, 참말로 좋은 이름을 얻기가 어렵다. 그만큼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편집 방향, 타켓팅 연령 등등 많은 것을 논의한 후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김광석 거리로 간다.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 골목길, 우범지역이었던 이 동네가 ‘김광석’의 거리로 이름을 바꾸자 하루 수천 명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잘 짜여진 스토리텔링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그가 내 또래였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감성이 매우 앞서 나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 ‘그와 나’가 이제 나는 그를 추억하면서 골목길을 배회하고 있다.

늘 내 여행에는 세렌디피티 인물이 등장한다. 오늘은 수성고량주 이승로 대표님이다. 전통을 지키고 전통을 가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안다. 전통에 눌리면 고리타분하고 전통을 벗어나면 천박해지는 그 한 가운데를 잡아서 쭉 이어간다는 것이 여간내기가 아니라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에 늘 경외감을 느낀다.

방천시장 골목길에 자리 잡은 돼지갈비집에서 낮술을 한다. 낮술이 주는 묘미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처럼 내가 지금 휴가 중이라는 징표를 드러내기 이보다 더 좋은 표식이 없기 때문이다. 대구 문화의 이야기가 쭉 이어진다. 

근대화의 상징인 별표 국수 ‘풍국면’에 당대 최고의 배우인 ‘신성일과 엄앵란’이가 TV 광고 모델로 등장하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여사가 결혼식을 올렸던 계산성당, 아이를 포대기에 업고 영화를 촬영했던 박남옥 여성 감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 6.25 전쟁의 최대 승부처인 다부동 전투의 전설, 명나라 두사충 장군이 조선 여인을 사랑했던 뽕나무 골목… 쉴새 없이 쏟아지는 대구 이야기에 반쯤 넋이 나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맥주가 한 병 더 추가된다.

나는 우리나라 지자체가 만들어 놓은 근대화 거리를 자주 찾는다. 군산도 가보고 목포도 가보았다. 더러 서울 용산에 있는 건축물도 보았다. 모두 ‘근대화’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근대화가 아니다.

근대화란 국가의 시스템을 왕조시대에서 현대로 바꾸는 그 중간과정에 있던 시기로서 정치, 군사, 경제, 교육, 도로, 집, 농경지 등등을 몽땅 들어내서 바꾸는 과정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은 박정희 대통령 때였다. 이 사실을 부정하니 우리 근대사가 얼룩지기 시작한다. before와 after 사이에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의 연구 없이 어떻게 국가가 지속 성장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인문학 계보, 경제학 계보, 민주화 계보에서 자유로운 공대생 출신이다. 내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경제를 바라보고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역사란 거대한 인과관계의 나열일뿐, 그 인과를 연결하는 해석은 작가의 몫이고 독자의 몫이다. 그 해석에서 가장 자유로운 ‘내’가 대구에서 만들어 놓은 ‘근대화’ 거리를 탐방한다.

대구 근대화의 상징은 계산동 가톨릭 성당과 약령시장 제일교회(第一敎會)다. 왜, 시장 한복판에 서양 문물의 상징인 종교시설이 들어서고,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병원과 학교가 세워졌을까? 이것이 근대화의 시작이다. 인간의 정신을 바꾸는 일과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일, 그리고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학교가 들어서야 하는 일. 그다음은 그 나라 국민이 잡풀처럼 일어나서 탈탈 털어 몽땅 뒤집고 새로 만드는 일이다. 대구는 한 공간에 그 모든 것이 있다. 성당과 교회, 병원 그리고 이상화 시인의 생가, 국채보상운동의 서상돈 생가, 명나라 장군 두사충이 사랑을 나누었던 뽕나무 거리까지. 모두 한군데. 이것이 대구 공간이 주는 매력이다.

어디, 땀 흘리지 않고 여행을 마친다면 그건 여행의 예의가 아니다. 우리는 대구만의 자랑인 제일콩국을 한 그릇하고 드디어 앞산으로 야간 산행을 떠난다. 비가 간간이 내렸지만, 많은 사람이 연휴의 마지막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앞산에 올라 대구의 야경을 바라본다. 거대한 행성 별빛이 주는 장엄함에 인증샷을 한 컷하고, 돼지찌개를 먹지 않으면 하산 완료가 아니라는 대표의 말에 따라 소주 석 잔에 저녁을 든든히 먹는다.

그리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12:25. 장대비가 쏟아진다. 많은 승객이 플랫폼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성인다. 우산도 없을뿐더러 시내버스도 뚝 끊기고 택시도 잘 잡히지 않아 망연자실한 서울역 광장, 나는 빗속을 뚫고 경찰청 쪽으로 걸어간다. 제법 많은 사람이 걷고 있다. 거기서 무악재를 넘어 홍은동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모두 서울역에서 출발하지만, 너무 복잡하여 어디서 타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서다. 

비가 쏟아지는 새벽 01:10 빨간색 9701번 직행버스가 온다. 천사가 따로 없다. 천사는 하늘에 조용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문명의 이기다. ‘직행버스’ 그 붉은 사각형 쇳덩어리가 천사이다. 함께 대구에 내려간 이 작가는 집까지 걸어갔다면서 하산 시 돼지 찌개를 먹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카톡에 전한다. 나는 반은 걷고 반은 타고 겨우 집에 도착하니 01:23, 이렇게 대구행 세렌디피티를 마무리한다.

*사진은 대구 김광석 거리 풍경과 근대화 풍경(2022.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