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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

도계점리 별밤유희

 

도계점리 별밤유희

2022.9.17.

천자문 집필을 위해 잠시 동해시에 있는 동안 ‘도계별밤’을 콜한다. 내가 먼저 콜 한 것이 맞겠지? 언제 어디서나 놀 궁리에 여념 없는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셋이 모였다. 정 박사님, 농막 주인인 박 대표님, 그리고 나. 모두 평생 IT를 하신 분이다. 정 박사님은 ‘절대 멈춰서는 안되는 탱크가 멈춰서다.’(22.6.15 펫북 글)의 주인공이고, 정 대표님은 오랫동안 IT 대표를 하면서도 만나기는 몇 달 전이었다. 그렇게 셋이 놀 궁리 하나에는 의기투합하여 이렇게 서울서 두 분이 오고 나는 동해시에서 갔다.

네비 주소를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점리 223”로 찍으니 마을회관에서 1킬로 떨어진 위치라 한다. 오호라 네비에 주소를 찍고 마을회관까지는 술술 갔다. 마을회관에서 투산 네비는 더 이상 가르쳐 주지 않으니, 다시 핸폰에 있는 카카오 앱을 켠다. 

마을회관에서 길이 세 군데 있는데 어디를 갈지 한 참 망설이다 ‘인간을 믿기보다 네비를 믿자’라는 모토로 카카오 앱을 따라간다. 막다른 절벽 길 위로 차는 위태롭게 달린다. 도저히 막다른 길이라는 생각에 여러 번 카카오 앱을 거절하고 쉬운 길 가기를 또 여러 번, 드디어 전화가 온다. 

“현 위치가 어디세요?” “마을회관”이라고 하니 다시 상세하게 가르쳐 준다. 드디어 카카오 앱에 나를 맡기고 절벽으로 난 외길로 차를 몬다. 외따로 떨어진 집 한 채를 지나고 오르막을 세게 오르니 드디어 박 대표님 농막에 도착한다.

옛날 화전으로 일구어 놓은 만든 밭 3만 평이 펼쳐져 있다. “저기~, 앞에 보이는 철탑 있잖아요? 철탑 위로 전부 제 땅이에요.” 박 대표는 옛 초가집을 허물고 조금 위쪽에 농막을 지었다. 비탈진 밭에 곰치도 심고, 오미자나무도 심고, 엄나무도 심고, 감나무도 심었지만, 서울서 주말농장으로 가꾸니 잡풀이 무성한 것을 감당할 수 없다. 제초제 노우, 농약 노우 그러니 풀이 더 무성할 수밖에. 우리가 여기에 도착한 것이다. 별밤을 보기 위해서, 풀벌레 소리를 듣기 위해서.

드디어 간신히 차를 주차하고 비탈진 밭으로 산책하러 간다. 시야가 탁 트여 좋다.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온 기분이다. 감나무는 노랗게 물이 들었는데, 감은 자잘하고 크지 않다. 오호라 여기는 강원 삼척, 아직 감나무가 성장하기에는 너무 추운 곳이 아닌가?

박 대표님이 태백을 넘어오면서 한우 등심을 1.2킬로 사 오셨다. 이것이 오늘 저녁 만찬 감당량. 처음처럼 2병, 화요 1병, 그리고 농막 앞뒤에 지천으로 있는 산나물을 뜯고, 작은 화덕에 불을 지핀다. 화덕에 군고구마가 얹히고, 그렇게 시작한 만찬은 저녁 8시 반까지 이어진다. 나는 별밤을 보기 들락날락한다. 북극성과 카시오페이아, 북두칠성이 뚜렷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은하수가 나오겠지. 주먹만 한 별을 보기에는 어릴 때 고향을 떠나온 후 처음이다. 아니 설악산 대청봉 다음이다.

다들, 서울서 오느라 그런지 벌써 멍 불 앞에서 꾸벅꾸벅 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늘 새벽처럼 일어나고 아홉 시 만 되면 자는 습관으로 멍 불을 보면서 슬그머니 잠이 든다. 풀벌레 소리가 가득하다. 아주 작은 소리로 밤새워 노래한다. 이놈들은 잠도 없나 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도계별밤’ 농막에서 황홀한 새벽 여명을 보고 내려오니 박 대표님은 어제에 이어 옻닭 한다고 가마솥에 장작 피우고 있고 정 박사님은 여전히 주무시고 계신다. 생닭에 뽕나무, 엄나무, 가시오가피, 감나무가 들어가고 가마솥의 연기가 하늘을 오른다. 신혼 때 장모님이 해 주신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아침에 닭백숙을 먹는다.

박 대표님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친구분들이 오셔서 모두 한결같은 말씀을 하였다고 한다. “자네, 정말 고생만 하다가 갔네” 화전민의 삶이란 우리는 상상을 할 수 없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근육이 짓이겨지는 고통 없이는 감내하기 힘든 노동이라는 것을 상상만 할 뿐이다. 왜냐하면 노동은 오직 소와 당신 몫이었으니까.

이제 우리는 어디로 향할까? 삼척 준경묘다. 장엄한 소나무, 내게 경외심을 안겨준 소나무, 그 소나무 숲속으로 트레킹 간다. 금강송아, 기다려라.

*사진은 도계점리 풍경사진(2022.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