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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풍광

꺼지지 않은 그리움

 

 

꺼지지 않은 그리움

2022.10.6.

문경새재를 넘어 고향 땅에 들어선다는 의미는 물리적 신체 위치가 고향 땅으로 들어간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정신도 덩달아 우리 마을을 최초로 만든 35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고향이란 유년의 달콤함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지만 가혹한 사유의 폭을 가져다준다. 전통과 관습이 지배하고 여전히 많은 것이 핏줄의 서열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시제를 지내기 위해서 내려간다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성철스님은 깨치려면 행주좌와에도 화두가 성성하여 살아있어야 한다고 했다. 고향도 그렇다. 그리움이 성성해야 한다. 언제나 눈만 떠지면 마주하는 하늘과 땅처럼 마땅히 그 모든 것을 보듬고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유년의 추억을 되돌아보면 가난으로 망가지려는 삶을 추슬러 발버둥 친 기억이 훨씬 더 많았지만, 기억의 잔상은 끈적이 같아 현시점부터 거슬러 올라가 지금이 행복하면 어렵던 과거도 행복하게 만든다.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좌표를 찍는다. 지금의 나는 어디에 위치하는가? 직업은 물론 나이, 건강, 재산, 지위 등등을 모두 따진다. 그 좌표 위에 고향을 올려놓아 남는 것이 있다면 그리움이 되어야 한다.

시제를 모시기 위해 서울, 부산, 대구는 물론 가까운 안동에서도 왔다. 불과 100년 전이라면 이곳에서 태어나 사방 100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었을 테지만, 우리 역사 5000년 만에 발생한 대변혁으로 초가집이 걷어지고, 천수답에 낙동강 물이 들어오고, 오솔길이 신작로로 바뀌면서 모두 신작로를 따라 고향을 떠났다. 

떠난 이들, 떠난 이들이 데리고 온 후손, 그렇게 낙동강 기슭에 자리 잡은 선산에 모여 우리 마을에 최초로 터를 잡은 어른께 제를 모신다.

나는 모른다. 그 어른이 남긴 생각이 무엇인지? 그 어른은 초원의 유목민처럼 문자를 남기지 않았고, 강바람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마냥 흘려보냈다. 그의 후손이 이렇게 많이 모여 함께 추억하고 '그리움'이라는 씨앗을 또 바람결에 날릴지 누가 알았겠는가?

마치 연어가 태어난 제 공간을 떠난 죽기 전에 다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듯이 그리움의 씨앗이 이곳이라는 사실을, 비록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우리의 후손도 언젠가는 깨닫겠지. 최초로 마을에 터를 잡은 이의 마지막 마음을.

*사진은 고향 모습(2022.11.5)